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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間)’, 음악의 부재, 메시지

by hazelvibe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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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이미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환상적인 세계관과 깊이 있는 서사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특한 연출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마(間)’라고 불리는 여백의 미학과 의도적인 음악의 부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間)’를 어떻게 활용했으며, 특정 장면에서 음악이 생략됨으로써 어떤 효과를 주는지 상세히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間)’ 가 주는 의미 

‘마(間)’는 일본 예술과 건축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여백’ 또는 ‘침묵의 미학’을 의미합니다. 일본 전통 연극(노(能)와 가부키(歌舞伎))에서는 대사와 대사의 사이, 혹은 동작과 동작 사이의 침묵을 ‘마’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법을 통해  더욱 깊은 여운과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는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 강렬한 음악이 사용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때때로 의도적으로 장면을 ‘비워두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관객이 캐릭터와 함께 숨을 고르고, 장면 속에서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장 대표적인 ‘마’의 장면은 치히로가 검은 그림자 같은 승객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긴 시간 동안 대사도 없고, 배경음악도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기차가 달리는 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가끔씩 들리는 차임벨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침묵과 정적인 분위기는 치히로가 겪는 감정적 변화를 관객이 온전히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이때 우리는 치히로가 이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한편, 하쿠가 치히로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고, 치히로가 그 사실을 기억해 내는 순간도 ‘마(間)’의 개념이 돋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BGM이 최소한으로 사용되며, 두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습니다. 음악이 없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캐릭터의 감정에 더 깊이 몰입합니다. 

음악의 부재가 주는 의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는 음악을 활용하여 보통 감정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특정한 감정적 클라이맥스에서 오히려 음악을 제거합니다. 이렇게 하면 캐릭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여,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줍니다. 예를 들어, 치히로가 처음으로 유바바와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웅장한 음악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후 치히로가 혼자 목욕탕에서 청소하는 장면에서는 음악 없이 물소리와 치히로의 숨소리만 들립니다. 이러한 대비는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서 우리는 항상 배경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종종 조용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음악이 사용되지 않는 장면들은 이러한 현실성을 반영합니다. 기차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만약 이 장면에 감성적인 음악이 깔렸다면, 관객은 감정을 강요받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이 없이 기차의 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장면에만 더욱 집중할 수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는 메시지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빠른 전개와 강렬한 음악으로 공감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이 직접 감정을 해석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스타일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극 중 캐릭터의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감정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음악 없이 조용한 장면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도 조용한 순간에 깊은 생각을 하거나, 감동을 느끼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반영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러한 점을 활용하여,  무엇을 '더하기' 보다는 '빼기'의 연출을 통해 치히로의 성장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의미를 훨씬 확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 하쿠와의 이별 장면처럼 조용한 순간들은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며, 캐릭터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 ‘마(間)’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특정 장면에서 음악을 제거하는 연출 기법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결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섬세한 연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때로는 소음보다 ‘침묵’이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침묵하기 보다 소음이 더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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